창문을 반쯤 열어 두었더니 살랑이는 바람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바람결에 실려 온 봄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문득, 이 계절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 바람은 부드럽고, 햇살은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책 한 권을 펼쳐 들고 창가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글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의 잎사귀들이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앙상했던 가지에 어느새 연둣빛 새순이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봄은 그렇게, 우리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조용히 다가와 있었습니다.
이런 날은 가벼운 산책이 제격입니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 천천히 걸어 보았습니다. 거리에는 한층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손을 꼭 잡고 걷는 연인들,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길을 건너는 부모님, 그리고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까지.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봄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길가에 핀 개나리가 바람에 흔들리고, 벚꽃잎이 하늘을 수놓으며 천천히 내려앉았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손을 내밀어 보았더니, 작은 꽃잎 하나가 손바닥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순간, 마음이 간질거리는 듯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한 조각의 봄이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고,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저 멀리에서는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멜로디가 잔잔하게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있자니, 바쁘게만 살아온 지난날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지만, 사실 가장 소중한 순간은 이렇게 평범한 하루 속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눈앞의 작은 꽃 한 송이, 지나가는 바람, 그리고 길가의 따뜻한 웃음들. 이런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요.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물들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습니다. 창가에 앉아 있었던 아침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같은 하루였지만, 오늘은 그 하루를 좀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창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람을 맞아 보았습니다. 아직 봄의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운이 내일도, 모레도 이어지길 바라며 조용히 미소 지었습니다. 오늘 하루, 참 따뜻하고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