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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의 친구들

[공익소송] 신동진 이사_ ‘조갑제닷컴’ 상대 명예훼손 1심 승소

‘조갑제닷컴’ 상대 명예훼손 1심 승소


신동진
|이사 ·한국장애인방송 기획제작국장




김예린 팀장의 상냥한 부탁에 차마 거절을 못하고 말았지만 정말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쓰게 됐습니다. 쓰고 싶지 않은 이유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시 끄집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08년 11월 25일에 조갑제닷컴에 실린 김현희 씨의 편지, 그리고 조갑제 씨의 글 등은 ‘명예훼손’감이라고 느끼기는 했지만 그렇게 심하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저 사람들 또 저러려니’ 하고 한 귀로 듣고 흘리려 했습니다.

기억도 하기 싫었다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의 21주기를 나흘 앞두고 그 글이 공표됐고, 이른바 뉴라이트 매체에 그 글이 신속하게 전파되고, 그것을 일부 정치인과 수구매체가 확대재생산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의 속이 빤히 들여다보여 심경이 착잡하긴 했지만, 국민들이 선택한 대통령 치하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어쩌겠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재판을 걸게 되고야 말았습니다.

나는 예전에 ‘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활동하면서 1987년 11월 29일에 발생한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곧 김현희가 폭파테러범으로 등장해 유명해진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을 했습니다. 조사관으로 활동하기 전에, 나는 다큐멘터리와 책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기존 수사발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건을 재수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국정원에 들어가 조사를 한 뒤에는 비록 과거 안기부 수사발표에 오류가 있고,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긴 했으나, ‘남한이 아닌 북한이 일으킨 테러라는 사건 자체의 본질은 틀림없다’는 기존의 발표를 재확인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국정원의 조사관으로 일하기 전에 내가 주장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조사결과를 나 스스로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내가 과거 시민사회단체들이 대한항공 858기 사건에 대해서 강하게 의혹을 제기했던 점을 고려해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그저 모른 체 했다면 대한항공 858기 사건의 본질은 ‘규명불가’로 결론이 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내 발등을 찍어가며, 나와 함께 의혹을 제기했던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에게 ‘묘한 의혹’의 눈길을 받으면서까지 진실을 밝히려 했던 이유는 대한항공 858기 사건의 유가족들이 더 이상 미혹에 빠져있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몇몇 유족은 아직도 “내 식구가 어딘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유족들이 돌아오지 못할 가족을 헛되이 기다리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일본인 납북 피해자 기자회견에 나온 김현희 씨(사진=뉴시스)

가슴이 치밀어

그러나 조사결과를 발표한 후, 나는 그 유족들로부터도, 이전의 ‘동지들’로부터도 싸늘한 대접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바람과는 달리 유가족회 집행부는 의혹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 때의 일은 힘들긴 했으나 좋은 인생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편한 기억들을 다시 하나하나 들춰내더라도 한판 붙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일이 생겼습니다. 바로 조갑제 씨와 김현희 씨가 일본 납북자 가족들을 만나는 이벤트을 벌인 것입니다.

“커가는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대중매체에 얼굴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며 언론을 피하고, 국가기관의 조사를 피했던 김현희 씨였습니다. 115명의 무고한 생명을 죽인 천인공노할 테러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증인’이라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고도 특별사면을 받았던 김현희 씨는 ‘자식들의 행복을 간절히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내세우며 끝끝내 내가 조사관으로 있던 국가기관의 조사를 거부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이제 대낮에 매스컴의 조명을 받으며 마치 인권투사라도 되었다는 것인지, 활보하는 모습은 보기가 역겨웠습니다.

내가 보기에 김현희 씨와 조갑제 씨 두 사람은 냉전을 다시 부추기는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갑제 씨는 총연출자로 보였습니다. 나는 공분(公憤)이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법정소송을 걸었습니다.

소송준비를 위해 ‘조갑제닷컴’을 어쩔 수 없이 자주 들어가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때 특종기자로 불리며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던 조갑제씨는 헌법 위에 군림하는 무슨 교주 같다. 내가 작성한 조사보고서 일부를 자신의 책에 상당부분 삽입해 팔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내게 확인취재조차 안 하고 조사결과를 폄훼하는 글을 싣는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없다.”

2라운드에서 계속

“오물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상대하기 어렵거나 정말 싫은 상대를 피하는 명분을 찾을 때 이런 말을 씁니다. 그런데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을 곱씹어보면, 그 말은 오물이 묻으면 씻고 빨고 하는 귀찮은 일이 생기게 되니, 결국 “귀찮은 일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을 근사하게 포장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씻고 빠는 일을 기꺼이 할 의지만 있다면 더럽다고 피할 것이 아니라 그 것을 치워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조갑제닷컴’과 소송을 하면서 든 생각입니다.

바쁜 와중에도 언론피해구조본부의 김종천 변호사가 변호를 잘 해줘서 지난 연말 일부 승소했습니다. 올해 초 조갑제 씨는 항소를 했습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2심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오물을 만나게 될지, 조금이라도 치우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