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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의 친구들

오미영 교수 '요지경'의 역습


‘요지경’의 역습

오미영 |자문위원· 경원대 신방과 교수



애꿎은 출연자

KBS텔레비전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한 여대생이 키 작은 남성을 비하해서 일어난 파문을 다시 생각해 본다. 인터넷 토론게시판을 뜨겁게 달구며 이른바 ‘루저’ 파문으로 번진 이 사례는 한 개인의 일탈적 발언쯤으로 치부하며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다. 주목할 부분은 파문이 커지자 출연 여대생이 “원고대로 했을 뿐”이라고 해명한 데 이어 제작진이 “사전 취재과정에서 확인한 내용이며 발언 여부는 개인의 자유의사에 속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책임 소재를 서둘러 출연자에게만 전가한 대목이다.

이 짤막한 소동은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와 출연자 사이에 책임 소재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출연자에게 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루저’ 발언에 흥분하고 분개한 남성들이 인터넷을 통해 여대생의 개인 정보를 추적해 적나라하게 공개하는 일이 눈 깜빡하는 사이 일어났다. 문제가 된 내용을 기획하고 편집과정까지 거쳐 방송을 내보낸 것은 제작진이지만, 정작 시청자들의 공격이 집중된 대상은 얼굴을 드러내고 발언한 출연자였다. 해당 여대생 입장에서 보자면 방송사를 철썩 같이 믿고 소신 발언한 일이 후회막급일 것이다. 그 여대생은 ‘요지경’ 같은 텔레비전이 무명씨를 단번에 유명인사로 만드는 것인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출연자가 역습을 당하게 만들 줄은 미처 몰랐을 것 아닌가.


걱정되는 생존방식

피해 여대생은 과거 케이블방송에서도 출연자로 활약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시청률에 울고 웃는 방송의 생존방식을 체험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던 듯도 싶다. 모르긴 몰라도, 시청자 눈과 귀를 사로잡기 위해 혈안이 되다시피 한 케이블방송에서 ‘루저’ 정도의 발언쯤이야 애교 수준일 것이다. 어쩌다 채널을 돌리면 쏟아져 나오는 ‘독한’ 표현들에 시청자들도 얼마쯤은 둔감해진 터이다. 하지만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이야 어차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마음에 안 들면 안 보면 그만이다. 그것이 지상파 방송과 다른 점이다.

이번 ‘미녀들의 수다’ 파문에서 확인되었듯이 지상파 인기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여전히 대단하며, 민감한 사안은 즉각 사회적인 이슈가 된다.

문제는 과연 지상파 방송, 그 가운데에서도 공영방송을 대표하는 KBS 제작진들이 이러한 지상파 방송의 사회적 책무를 충분히 무겁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상파 방송은 책무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케이블방송과 경쟁하듯 시청률에 골몰했기에 결국 ‘루저’ 파문이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향후 극심한 경쟁구도에 놓이게 될 것이 분명한 우리나라 방송계 상황을 감안할 때, KBS의 올바른 사회적 책무감이 더욱 절실히 요청된다. 개정된 미디어법에 따라 종합편성 채널 사업자가 선정돼 채널이 늘어나면 방송가의 시청률 싸움은 선정성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뻔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KBS가 다시는 ‘루저’ 파문과 같은 일로 논란의 중심에 서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