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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에게 물어봐/미디어 토론회

“공인의 사생활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과 “언론의 자유”의 충돌 - 언론인권포럼 '권력기관화 된 언론의 문제' 발제문


공인의 사생활보도로 인한 명예훼손과 언론의 자유의 충돌-이진아.hwp


“공인의 사생활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과

“언론의 자유”의 충돌



- 이진아 변호사 (법무법인 대영)



이 자리는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종창 사생활 의혹 보도와 관련하여, 언론 보도에 대한 문제점을 고민해보고자 마련된 자리입니다.

저는 법조인의 입장에서 공인의 사생활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과 언론 자유의 충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공인의 사적 생활을 어느 정도까지 보도하는 게 옳은가, 즉, 공인의 직무와는 관련이 없는 사안인데, 공인의 윤리성과는 관계가 되는 사안을 보도하는 게 옳은가?”입니다.

명예보호와 언론의 자유, 이 두 가지 법익은 전 세계 모든 국가가 헌법상 명문 규정이나 판례를 통해서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권리입니다. 그래서 이 두 권리가 충돌되는 경우에는 어떤 권리를 우선해서 보호해야 하는 것인지 많은 논의가 진행 중에 있고, 특히 공인의 사생활 의혹 보도는 그 논의의 중심에 있습니다.


 










‘현실적 악의’와 언론자유


언론의 자유를 가장 폭 넓게 인정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 언론의 자유 보장을 근거로 공적 인물의 명예를 지극히 낮은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최근 “현실적 악의”이론에 따라서 공인의 명예훼손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고에게 현실적 악의가 있었음을 입증하도록 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표현의 자유 및 토론이 위축될 것을 염려하여 생겨난 이론입니다. 특히, 선거 후보자에 대한 의혹 제기는 매우 폭넓게 인정되고, 만약 검사가 이러한 의혹제기 한 자를 후보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기소라도 하는 날에는 오히려 국가가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집니다.

미국은 ‘현실적 악의’기준이 정부와 관련된 문제와 공직자 원고에 대한 논의의 영역을 넘어 비정부적인 ‘공적인 인사’라는 보다 넓은 범위로 확대되면서 언론자유를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았지만 지나친 ‘현실적 악의’원리의 확대는 그 본래의 목적과 정당성을 퇴색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안고 있기도 합니다. 언론의 상업적 폐해를 우려하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공인의 명예를 더욱 두텁게 보호하는 입장입니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사인과 공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기준, 공적인 관심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대한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당해 표현으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인물인지 아니면 사인(私人)인지, 그 표현이 공적인 관심 사안에 관한 것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인인지, 피해자가 당해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사실(알권리)로서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등을 종합하여 구체적인 표현내용과 방식에 따라 상반되는 두 권리를 유형적으로 형량한 비례관계를 따져 언론의 자유에 대한 한계설정을 할 필요가 있”고, “공적 인물과 사인, 공적인 관심 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 간에는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이 나온 후에도 우리 법원의 판례를 보면 공적 인물, 공적 관심사안에 대하여 언론자유의 폭을 크게 확장하여 상당한 이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정도로 나아간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지나친 ‘공인에 대한 명예보호’


현직 판사·검사를 비롯한 검찰과 법원 직원, 경찰관 등 200여 명이 변호사에게 사건수임을 알선하고, 소개비로 건당 20만∼300만 원씩 받아온 대전법조비리 사건은 모두들 기억하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 비리 보도로 인하여 대전지검 검사들의 명예가 훼손되었으니 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공인의 직무와 직결되는 내용의 보도에 대해서도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고 공인의 명예를 더 보호했다는 측면에서 지금까지도 비판 받고 있는 판례입니다.

그렇다면,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관련 의혹 보도는 어떨까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명예를 훼손한 보도로 평가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공인에 대한 도덕성 검증을 위한 보도로써 그 언론의 자유 및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한 적절한 보도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확립되지 못한 사법적 기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보도 청구가 갑작스레 취하되면서, 다들 궁금해 하시는 ‘과연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 그 확인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조선일보의 공인의 내밀한 사생활 영역에 관한 의혹 보도는,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공인이라 하더라도 지극히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사생활의 비밀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고, 공인의 도덕성과 관련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론의 자유가 우선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공인의 도덕성 검증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합니다.

저는 법조인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바라볼 때, 좀 전에 소개해드린 대전법조비리 사건에 대한 판결 등 법원의 결정이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은 법조계 역시 아직 확립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 판례는 언론의 자유와 공인의 명예훼손에 관하여

“민주주의 정치 제도 하에서 언론의 자유는 가장 기초적인 기본권이고 그것이 선거과정에서도 충분히 보장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를 위하여 후보자에게 위법이나 부도덕함을 의심하게 하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지더라도 잠시나마 후보자의 명예가 훼손됨은 물론 임박한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오도하는 중대한 결과가 야기되므로 후보자의 비리 등에 관한 의혹의 제기는 그러한 의혹이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당한 이유’를 판단함에 있어 그 결론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사안마다 죄명과 사안은 조금 다른 부분이 있지만,

① 17대 대선과 관련하여 “병 후보자가 정과 공모하여 주가조작 및 횡령을 하였다는 사실”을 발언한 자에 대해서는 주장에 상당한 이유(근거)가 없다고 하면서 유죄를 선고하였고(대법원 2011. 12. 22. 선고 2008도11847판결),

②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 노후보 장인이 인민위원장 빨치산 출신인데 애국지사 11명을 죽이고 형무소에서 공산당 만세 부르다 죽었다, 공산당 김정일이가 총애하는 노무현이가 정권 잡으면 나는 절대 못산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한나라당 선거대책자문위원회 의장의 주장은 ‘공공의 이익’에 해당하여 무죄라고 선고하였습니다(대법원 2004. 10. 27. 선고2004도3919판결).

③ ‘이하’라는 팝 아티스트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묘사한 포스터 부착행위에 대해서는 유죄를 전제로 하는 1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이, 박근혜 대통령을 백설공주로, 문재인과 안철수의 얼굴을 반반 붙여 놓은 포스터 부착행위는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무죄의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3고합538).


위의 판례는 피고가 언론매체가 아니라 사인(私人)으로 표현의 자유 영역과 명예훼손이 충돌한 경우입니다만 ‘상당한 이유’에 있어서 그 기준이 확립되지 못한 사례입니다.


언론자유와 명예보호의 균형 - 알권리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조선일보 보도는 공직자에 대한 도덕성 비판의 영역에서 보도된 것인지, 언론의 지나친 권력집중의 형태로 나타난 도발적 이슈인지 앞으로 상당기간 논의가 될 사안입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우리 법원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인지 또한 진지하고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특히 공직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 검증은 넓게 허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공직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을 철저히 검증되어야 할 사안입니다. 그러나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가 여타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법원이 공직자 명예를 두텁게 보호하면 처벌과 소송을 두려워하여 공익이슈에 대한 활발하고 공개적인 토론이 위축되고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이 제한됩니다. 그것은 국민의 알권리와 사회구성원 모두의 언론자유가 제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직자에 대한 모든 보도가 국민의 알권리에 해당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불순한 의도가 ‘알권리’로 둔갑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언론이 지나치게 상업화, 권력기관화, 정치화 되어가면서, ‘아니면 말지’ 식의 보도를 통해 무분별하게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은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이번 조선일보 보도는 언론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한 몸이 되어 보도를 한 것으로 법원에서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공인이나 공직 후보자, 공기관 대한 언론의 보도는 국민의 알권리에 부합한 것인지가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