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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 상담 연재

쥐도 새도 모르게 시사고발프로그램에 취재된 내 일터


쥐도 새도 모르게 시사고발프로그램에 취재된 내 일터


시장 근처에 위치한 식당은 평소대로라면 오후 늘그막에 문을 연다. 사장님은 그날따라 몹시 예민해져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한 번도 없던 직원회의를 한다며 평소 출근 시간보다 일찍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무슨 일 때문인지 몰라 어리둥절 사장님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정도 직원들이 모이자 사장님은 굳게 다문 입을 열고 어젯밤 어느 방송국의 시사고발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하품이 나왔다.

  ‘뜬금없이 무슨 시사고발프로그램이야, 밤 새 주방에서 일하기도 힘든데….’

그런데 사장님이 꺼낸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말인즉슨, 어제 시사고발프로그램에 우리 식당이 나왔는데 우리 식당이 국산으로 둔갑한 외국산 고기를 이용해 요리를 한다는 내용이었단다. 나는 눈치도 없이 사장님께 정말이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다가 된통 혼이 났다. 방송사에서 맛 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찍는다고 우리 식당에 종종 오곤 했지만 난데없이 시사고발프로그램이라니. 직원들은 웅성웅성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장님은 우리 식당이 나온 시사고발프로그램을 직접 직원들에게 보여주었다. 직원들에게 그 당시 상황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다들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평범한 손님으로 가장해 들어온 여자 리포터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허락한 적 없는 취재와 인터뷰, 억울합니다


  “야. 뚱보. 우냐? 뭔 일 났어?”

다음 장면이 나오자 일제히 직원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화면에는 식당 뒤편에서 잠시 담배를 피우는 내 모습이 나왔다. 화장실 다녀오다 잠깐 담배를 피운 건데 그 때 나눈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나는 PD인 줄도 몰랐고 내 기억 속에는 그와 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것 같은데 방송에는 마치 내가 우리 식당에 큰 비리가 있는 것처럼 말하듯 보였다. 나는 사장님께 우리가 외국산 고기를 사용한 적이 없는데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사장님이 힘이 축 처진 얼굴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나는 정말 화가 나고 억울해서 눈물이 쏙 나왔다. 사장님은 그냥 알았다고만 했다. 그리고 일단 조치를 취해야지 않겠냐고 말한 뒤, 직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여기저기 전전하다 처음 제대로 자리 잡은 식당이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라서 더 억울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식당 주차장 끝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눈물이 쉴 새 없이 나왔다. 다 먹은 짜장면 그릇을 수거하고 돌아오는 옆집 중국집 배달원인 용이가 오토바이를 세우고 나를 쳐다보았다.


  “뚱보라 하지마! 지는 사마귀처럼 생긴 게!”

  “뭔데 일단 말이나 해봐.”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을까 고민한다고 얘기하자 용이가 자기가 자주 배달하는 변호사 사무실에 같이 가보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곳이 어딘지 물었다. 용이가 자기 오토바이에 일단 타라고 했다. 나는 눈물을 훔치고 구식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오우. 너 무게 몇 그램 나가냐?”

나는 용이의 뒤통수를 한 대 퍽 쳤다. 변호사 사무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막상 들어가려니 겁이 났다.

  “나 돈 많이 없는데… 돈 많이 달라하면 어떡해?”

  “괜찮아. 여기 우리 가게에 외상 빚 장난 아니야. 그걸로 협박하지 뭐.”



용이가 등을 떠밀어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갔다. 책상에 발을 올리고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실실 쪼개던 여자가 시선을 돌렸다.

  “짬뽕 그릇 가지러 왔어?”

  “아니요. 얘가 상담할 게 있대요.”

  “뭔데? 30초 내로 얘기해.”




동의 없는 촬영은 초상권 침해

사실과 다른 보도로 사회적 평가 떨어트리면 명예훼손


나는 지레 겁먹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빠른 속도로 아침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여자가 나를 빤히 보더니 씩 웃었다.

  “1분 지났어.”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자 옆에 있던 용이가 내 모습을 보고 낄낄 웃었다. 용이를 째려봤다. 여자는 책상에서 발을 내리고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나도 따라서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시사고발프로그램과 같이 고발 또는 폭로하는 방송의 경우에는 무조건 제작진이 신분을 밝히고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 다음에 촬영을 해야 돼. 그런데 동의한 적도 없고 제작진이 도둑 고양이마냥 몰래 찍어서 방송에 내보냈다는 거 아냐? 그건 초상권 침해야. 게다가 사실과 다르게 상황을 보도해서 맛 집으로 나름 신뢰받고 있는 너희 음식점의 평판을 떨어트렸다면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도 있어. 이 건 네 선에서 해결할 문제 아니니까, 일단 사장님을 우리 사무실로 모셔올래? 내가 용이 봐서 특별히 저렴한 비용에 해준다고 해. 우리 사무실 그리고 이 분야에 정평 나있어. 저번에도 내가 이런 사건 처리했다니까? 믿어봐.”

귀가 솔깃해졌다. 이 기쁜 소식을 사장님께 빨리 알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내 억울함도 풀고 그동안 잘해준 사장님께 손을 보태고 싶었다. 몇 번이나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용이는 짬뽕 좀 깨끗이 좀 먹으라고 잔소리를 한바탕 하고 그릇을 들고 나왔다. 이후에 사장님은 변호사를 통해서 방송사 시사고발프로그램에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과 정정 보도를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했다.


정다연 그림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