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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 상담 연재

내 딸이 인터뷰 보도 후 학교에서 놀림을 받습니다


내 딸이 인터뷰 보도 후 학교에서 놀림을 받습니다



그 날 이후로 우리 집은 깊은 침묵 속에 빠졌다. 열네 살 하나뿐인 내 딸아이는 집에 들어오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 나오질 않았다. 매일 아침이면 학교에 가기 싫다고 엄마와 한바탕 싸우고 울음바다를 만든 뒤에야 처진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딸을 학교에 보낸 아내는 혼자 남아 우는 일이 잦았다. 나는 회사를 마치면 암흑 같은 집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승진도 미끄러지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가는 날이 늘었다. 이 모든 게 뉴스에 나온 그 보도 때문이다.

퇴근 후 넥타이를 풀면서 아내에게 딸아이가 받고 있는 정신과 치료에 대해 물어봤다. 아내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현이 치료는 잘 받았어?”

  “어. 지현이가 의사 선생님한테 아이들이 너무 놀려서 혼자 화장실에도 못가겠다고 했대.”

  “다 내 탓이야. 난 그저 자존감 높여주는 캠프에 보내면 우리 딸이 자신감도 생기고 그럴까봐 보낸 건데.”

  “여보 그렇게 생각하지 마. 우리 탓이 아니잖아. 잘못은 그들이 했어. 그 망할 인터뷰 때문에….”

그 때 초인종이 울렸다. 아내가 현관으로 나가고 나도 무슨 일인가 싶어 거실로 나갔다.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묶어 올린 젊은 여자가 떡을 들고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새로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이웃인데요. 김아씨라고 합니다. 여기 명함. 제가 최근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거든요.”

  “아, 네 반갑습니다.”

  “아니지,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요. 내일 낮 2시부터 4시까지 화장실 공사를 하는데 시끄러울 것 같아서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래된 아파트인데 어쩔 수 없죠. 떡은 잘 먹겠습니다.”

이웃집 여자가 집으로 돌아가자 아내는 어색한 미소를 지워버리고 포장된 떡과 명함을 식탁위에 내팽개쳤다. 나는 식탁위에 명함을 보다가 변호사 사무실 위치가 회사랑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딸아이는 왕따가 아닙니다


회사 점심시간에 맞추어 조금 일찍 사무실을 나왔다. 택시를 타고 명함 속 주소가 있는 곳으로 갔다. 오래된 상가 건물 복도 끝으로 들어가자 에이에스 변호사 사무실이 나타났다. 사무실 문을 노크해도 인기척이 없자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점심을 먹고 있던 옆집 여자와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녀는 3초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벌떡 일어나 나를 소파로 안내했다.

  “무슨 일로 오셨죠? 땅 문제인가요? 아니면 이혼?”

  “둘 다 아닌데요. 저 어제 저희 집에 떡 들고 오셨는데, 1203호 사는 사람입니다.”

  “아…. 네? 제 옆집에 사신다구요?”

  “네.”

  “그러면 혹시 간통?”

나는 당황스러워 고개를 저어 부정하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다른 남자 직원이 커피를 내주었다. 변호사는 양 볼에 쑤셔 넣은 김밥이 감당 안 돼 빵빵한 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일단 그 김밥 좀 다 드시고 말씀하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나는 아주 차분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이야기하면서 괴로운 감정이 밀려왔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작년 겨울에 있었던 일입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저는 딸을 캠프에 보냈습니다. 말이 자존감 향상 캠프이지 사실은 내성적이고 친구도 잘 못 사귀는 아이가 걱정되어서 사회성 향상을 도와주는 캠프에 보낸 거였어요. 아이는 캠프에 다녀온 뒤로 한참 들떠 있었는데, 이유는 아이가 캠프에서 NBC 방송국 기자와 인터뷰를 한 탓이었어요. 아이는 그 보도만을 손꼽아 기다렸죠. 평소 안 보던 뉴스를 매일 챙겨보면서 말이에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까. 변호사는 한참을 기다려 주었다.

  “보도에 문제가 있었군요.”

정적을 깬 변호사의 말에 마음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참아왔던 눈물이 이를 악물어도 밖으로 새나왔다. 흐느낌이 공중을 가르고 퍼졌다. 변호사가 건넨 티슈로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제 아이는 왕따가 아닙니다. 소심해서 기 센 친구들한테 자기 의견을 잘 표현 못해 내버려두는 것뿐이에요. 이전에도 따돌림 당하거나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딸의 인터뷰가 실린 보도에서 기자가 딸이 왕따의 사회성 향상을 위한 캠프에 참여한 것이라고 말했어요. 딸이 왕따라고 말한 거나 다름없죠. 저녁 아홉시 뉴스에 그 보도가 전국적으로 나갔다고요. 뉴스를 본 딸의 중학교 친구들이 딸을 놀리기 시작했어요. 막 입학한 학교라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딸은 왕따로 낙인찍혔어요. 혼자 화장실도 가지 못할 정도에요. 지금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변호사님, 우리 집은 평범한 집이었어요. 그런데 그 보도 때문에 모든 게 다 변했어요. 딸아이는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고 울어요. 아내는 그런 딸의 마음을 알면서도 억지로 학교에 보내놓고 혼자 또 울어요. 어떻게 하면 그 기자와 방송국으로부터 사과 받을 수 있을까요? 네?”



허위보도로 인한 명예훼손·프라이버시권·초상권 침해


나는 변호사에게 딸아이가 나온 보도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참을 고개 숙여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단지 캠프에 참여한 학생이 마치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처럼 보도한 것은 명백히 허위 보도입니다. 학생은 인터뷰 할 때 얼굴과 실명이 공개되는 것을 알았지만 본인이 왕따로 비춰지도록 보도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죠?”

  “네, 맞습니다. 왕따라고 소개된다면 절대 인터뷰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느 누가 하겠어요.”

  “게다가 이 보도로 학생은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 놀림을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어렵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고요. 부모님 또한 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시겠어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말 할 것도 없어요. 명백한 허위보도입니다. NBC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요. 이 보도는 명예훼손·프라이버시권·초상권 모두 침해하였어요. 잘못된 보도가 있다면 그에 마땅한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해야죠.”

짧은 점심시간이 끝났다. 에이에스 변호사 사무실을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잿빛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은 비가 올 것처럼 음산하고 어두웠다. 빈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마른 입안으로 쓴 침이 꼴깍 넘어갔다. 


정다연 그림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