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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의 친구들

신년[2] 강청완 회원_ 안나푸르나의 법칙


호랑이의 꿈

안나푸르나의 법칙

강청완 회원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봉은 수렴 뒤에 숨은 전설의 미녀처럼 좀처럼 그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산에서 엇갈린 몇 명의 하산 객들은 다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밤이 깊도록 안나푸르나는 언뜻언뜻 그 등성이를 달빛에 드러낼 뿐이다.

대면의 순간에

겨우 하룻밤을 보내고 일어나 고산병에 좋다는 마늘스프를 아침으로 한 숟갈 뜨려 할 때쯤 가이드인 우다야가 우리를 황급히 불렀다. “안나푸르나가 허락했다(안나푸르나 세이 예스!)”고 소리친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모두가 뛰쳐나갔다.

드디어 안나푸르나를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전날 짙은 안개 산만이 우뚝 서 있던 곳에 태양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는 설산이 서 있다. 모든 시야가 활짝 개었다. 안나푸르나의 모든 봉우리가 보였다. 우리는 한참을 그냥 서 있었다. 내 구식 카메라로 저 완전함을 다 담아가지 못할 바에야 내 마음에 온전히 담고 싶었다. 두꺼운 안경도 벗어버렸다. 그 광경을 아무것도 거치지 않고서 내 두 눈에 받아들일 셈으로.



올해는 내가 태어난 해를 포함해서 세 번째 맞는 호랑이 해다. 아직 “나이를 먹는다”고 말하기 송구한 나이지만, 요즈음 한 살 한 살 나이를 세어가며 느끼는 감정은 신비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포함하는 새로운 것이다.

저 안나푸르나가 발을 디딘 만큼만 스스로를 허락했듯 나 역시 한 치의 보탬도 에누리도 없이 딱 내가 디딘 그만큼의 지점에 서 있게 된다. 새롭게 체득한 이 ‘법칙’ 앞에서, 나는 홀로 신비로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냉정함에 몸을 떨고 있다.

한발 한발이 모여 내가 된다

유예기간의 막바지에 들어서는 스물다섯 대학생인 내가 서 있는 이 지점에도 수많은 희망과 기원이 교차하고 있다.

산을 오르며 눈에 보이는 정상을 디딜 것을 꿈꾸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사실 내게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안나푸르나를 마주했던 그 순간보다도 산을 오르고 내리며 친구와 투덕대고, 혼자 생각에 잠기고, 한발 한발 옮기고 하던 모든 여정이었다.

그리운 히말라야를 떠올리며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은 우리 살아가는 세상도 이 산과 같았으면 하는 것이다. 때로 비가 내리고 길이 무너지고 맹수를 두려워해야 할 때가 있지만 물과 열매, 그리고 어머니 같은 대자연이 공존하는 그곳처럼 말이다.

걸어온 만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세상을 걷고 싶다. 내가 걸어오고 걸어갈 발자국을 다른 이들에게 기꺼이 일러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