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미지별의 친구들

이오영 변호사 "언론법 강행처리 해결법은 하나다"


[이오영 변호사 칼럼]

언론법 강행처리
해결법은 하나다

이오영 감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


명분과 실상이 다르다

명분과 실상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상사는 양자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음을 보여준다. 현실을 비추는 거울인 언론이 굴절되지 않고 곧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요즘 많은 국민들의 꿈자리는 뒤숭숭하다 못해 사나울 것이다. 하루하루의 생업도 힘겨운 터에, 용산참사의 원혼들은 6개월이 넘도록 안식처를 찾지 못한 채 허공을 헤매고 있고, 평택 쌍용자동차에서는 전쟁터를 무색케 하는 극한적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분명히 이러한 사태를 야기하여 큰 책임을 져야할 주체가 있겠지만 그들은 뒤로 빠져 보이지 않고, 애꿎은 일반 국민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 그럼에도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 벌어진 언론관계법의 강행처리와 변칙처리도 명분과 실상의 괴리 속에서 많은 국민을 옥죄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당은 강행처리의 명분으로 미디어산업의 발전, 공중파방송 독과점의 해소, 일자리의 창출과 같은 우아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많은 국민은 이미 명분 속의 실체가 그렇게 우아하지 않다는 것을 꿰뚫어 알고 있다.

이번 언론법 강행처리는 한나라당에 우호적인 방송환경을 조성하고 조중동이 방송산업에 진출할 길을 열어, 이를 통해서 재집권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여러 가지 여론조사결과는 다수 국민이 그런 의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접점 안 찾고 왜 밀어붙이나

사실 강행처리 이전에 이미 국회의장과 여당의원들은 언론관계법의 목적이 조중동의 방송진출, 민생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자인하기도 하여, 명분과 실상의 괴리가 명백히 드러난 터였다.
문제는 우리사회에 시급하게 풀어야할 현안이 무수히 많음에도 만사 제쳐놓고, 민생과는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성격상 차분히 논의하여 접점을 찾아야 하는 언론법을 군사작전 하듯이 밀어붙이는 무모함과 집요함이다.

언론은 선거제도와 함께 민주주의의 토대라는 점에서, 언론법은 어렵더라도 마땅히 인내를 가지고 논의하여 접점을 찾아야했다.
언론관련법을 밀어붙이면 된다는 집권여당의 무모함은 어디에 연유하는 것일까? 무엇인가 정당하지 못한 의도와 이해관계가 작용한 것이라면 그 한계는 이내 드러나고 말 것이다.
민주주의의 토대를 규정하는 문제인데 사회적으로 충분히 합의하지 않았음에도 일방 강행하면 소모적인 논쟁과 부작용을 필연적으로 초래한다. 이번 언론법 강행처리를 용인하여, 언론이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본연의 의무를 방기한 채 사적 이익에 골몰하게 된다면 그 폐해는 떠올리기도 두렵다.

얼마나 초라하고 부끄러운가

이번 언론법의 강행처리는 단순한 절차상의 무리수에 그치지 않는다. 재투표, 대리투표의 위법성을 드러내었다. 강행처리과정에서 대리투표가 있었음은 객관적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또 방송법개정안의 재투표가 국회법상의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법리로 판단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부인할 수 없는 위법을 변명과 궤변으로 가리려 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강행처리를 하자말자 방송법시행령 개정과 신규채널 사업자선정 등 후속조치를 하겠다고 서두르고 있다.
재투표 ,대리투표의 위법을 둘러싼 논란이 중대하여, 헌재에 방송법의 무효여부를 다투는 소송이 계류되어 있음에도, 재판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이를 무리하게 시행하려는 속셈이다.

논리와 절차는 어차피 명분이요 허울이고, 중요한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피아간의 입장뿐이라면, 그 적나라한 현실 속에 우리 모습은 얼마나 초라하고 부끄러운 것인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온갖 고통과 희생을 무릅쓰고 여기에 오기까지, 우리의 믿음과 힘이 되어 왔던 원칙과 기준, 최소한의 상식이 무너지고 있는 느낌이다.

해결책은 하나다

해결책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무엇보다 현 사태를 야기한 정치세력이 대승적으로 수습하여야 하겠지만, 그러한 기대가 난망한 만큼, 권한쟁의심판과 가처분소송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가 이에 대해 신속하게 심리하여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것은 헌법가치를 수호하는 헌재의 신성한 책무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은 또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은 국회의 날치기 활극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이 선출한 심부름꾼에 의해 업신여겨지고 능멸 당하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현 상황은 그동안의 비리와 부정의를 제대로 끝까지 단죄하지 못한 자업자득으로 여겨져 비감하다.
나라의 주인노릇하기가 참으로 어렵지만, 그러나 어쩌겠는가?
국민이 주권자라는 헌법상의 명제가 단순한 명분이나 장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랜 희생 끝에 쟁취한 우리 사회의 실체임을 믿고 또 믿을 수밖에.
국민이 주권자라는 헌법정신에 의문이 들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고통스럽게 확인하고 증명할 밖에, 다른 길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