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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 상담 연재

내가 절대 아닌데... 다른 신문기사 속 '나쁜' 놈이 나라고 한다


내가 절대 아닌데... 다들 신문기사 속 ‘나쁜’ 놈이 나라고 한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을 만났다. 중년이 된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삼겹살을 구운 냄새가 공중으로 퍼지고 친구들은 옛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변호사 일을 하는 친구가 술을 마시다 말고 술잔을 들고 망설이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인마, 술 안마시냐?”

“마시면 안 돼. 몇 달 전에 당뇨 판정을 받았거든.”

“당뇨? 나도 조심해야 되는데. 우리가 이제 건강을 걱정할 나이구나.”

“그렇지 뭐.” “그래, 학교 정년퇴임 후에는 따로 계획 있고?”

“그냥 취미생활 하지 않겠어?”

구워지는 고기 위로 부연 연기가 번졌다. 퇴직 후 계획이나 자식들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밤이 깊어지자 몇 친구들은 술이 한껏 취했다. 나는 취한 친구들을 끌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몇 명은 대리를 불러 보내고 나머지는 택시를 태워 보냈다. 그런데 택시를 기다리다 친구 한 명이 술집 앞에 서성이던 다른 취객과 시비가 붙었다. 술자리가 으레 그렇듯 나는 친구를 말리다 싸움에 끼게 되었다. 서로 ‘내가 어떤 사람인데 말이야’ 이런 말들과 욕설이 오가며 싸움은 크게 번졌다. 술집 사장이 나와서 택시에 내 친구들을 태워 보내기 전까지 싸움은 그치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은 흔히 있는 술자리 싸움 정도로 남아 점점 잊혀졌다.



기사 때문에 폭행하는 교장으로 낙인찍혀

“아버님, 신문에 기사가 났는데요. 혹시 보셨어요? 우리 애 친구 엄마들이 아버님 아니냐고 자꾸 묻더라고요.”어느 날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며느리로부터 연락이 왔다.

“무슨 기사 말이냐?”

“연주시 서구 B초등학교 교장이 학교 행정실장을 폭행해서 입원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우리 구에 B초등학교라고는 아버님이 계신 학교밖에 없잖아요.”

나는 놀라서 며느리가 말한 신문을 가져와 기사를 확인했다. 당황스러워 말문이 막혔다. 행정실장을 폭행했다는 날짜, 시간, 장소를 더듬어보니 고등학교 동창들과 모인 그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행정실장을 만난 적도 없고 폭행 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퇴근 후에 집에 돌아가자 아내기 기다렸다는 듯이 그 기사 이야기부터 했다. 아내가 어떻게 된 거냐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기사 속에 지명된 교장이 내가 아니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나는 해당 신문사에 전화를 했다. 나를 더 황당하게 한 것은 별 일 아니라는 신문사의 태도였다. 기사는 제보를 바탕으로 기자가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에 내보낸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기사에 내 이름이나 우리학교 이름이 정확하게 명시되지 않았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신문사는 다시 고쳐 보도 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주변 사람들이 한 번씩 전화 해 기사 내용에 대해 물었다. 일일이 아니라고 오해라고 해명하는 수밖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교사들로부터 학부모들 사이에서 내가 폭행하는 교장으로 소문이 떠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대로 아니라고 일일이 해명하는 덴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그 기사 내용을 두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 같아 점점 스트레스가 쌓였다. 결국 나는 변호사 친구에게 연락을 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 이름이 명시되지 않아도 명예훼손

친구는 이 분야에 빠삭한 변호사라며 종로구에 있는 어떤 변호사 사무실을 소개해주었다. 나는 약속 시간에 맞추어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갔다. 사무실은 재래시장 옆 후미진 상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여기가 에이에스 변호사 사무실 맞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짬뽕 냄새가 진하게 퍼졌다. 탁자 앞에서 짬뽕을 후루룩 들이키던 남녀가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남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변호사는 이쪽인데요. 안녕하세요. 변호사 김아씨입니다.”

옆에 있던 여성이 손을 내밀더니 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실수했다싶어 멋쩍게 웃었다. 김 변호사는 짬뽕 국물이 묻은 입술을 휴지로 닦고 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선생님. 정말 많이 당황하셨지요? 이 문제는 백 퍼센트! 명예훼손입니다. 교장 선생님의 성함이나 학교 이름이 명확하게 기사에 나오지 않았더라도 기사를 통해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면 이는 교장 선생님을 가리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께서는 폭행 사실이 전혀 없고 따라서 보도가 사실과 다르므로 신문사가 교장 선생님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되겠네요. 이 경우, 신문사에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요청하면 됩니다.”

“제가 신문사에 연락을 안 해본 것도 아니고 다시 보도해달라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소용이 없어요. 콧방귀만 뀌면서 꿈쩍도 안합디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것입니다. 일단 저희에게 맡겨만 주시면 좋게 아주 좋게 끝내겠습니다. 어디 신문사라고 하셨지요?”

며칠 뒤 변호사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잘 마무리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신문사로부터 직접적인 사과는 받지 못했지만 아주 짤막하게 기사를 정정하는 란에 바로잡는다는 글이 실렸다.   


정다연 그림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