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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에게 물어봐/미디어 이야기

'사이버 모욕'과 시민권


'사이버 모욕'과 시민권



윤여진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


새삼 우리사회에서 시민에게 지워진 자유와 책임의 크기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최근 언론인권센터에서 일어난 ‘사건’때문이었다. 센터는 『공개질의서』란 형식으로 네티즌들 사이에 핫이슈로 등장한 ‘사이버모욕죄’에 대한 센터의 생각과 입장을 법안을 제출한 의원들과 법무부장관에게 보냈다.


당사자의 고소 없이도 수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이른바 반의사 불벌죄(反意思 不罰罪)를 포함한 사이버모욕죄에 관련해 공개 질의를 한 것이다.

공개질의서 바로가기   http://press119.or.kr/124

그런데 이 글에서 ‘사이버 모욕’의 사례로 언급된 한 보수논객이 본인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언론인권센터에 공개사과를 요구해왔다. 사이버 모욕에 대한 문제제기가 오히려 사이버 모욕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민주사회에서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정말 인간에게 모욕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이버 모욕’을 검찰이 판단할 수 있을까?

‘미네르바를 사이버모욕죄로 처벌하시겠습니까’로 시작된 우리의 공개질의서는, 악성 댓글을 비롯한 사이버 상의 인격권 침해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지만 시민은 누구나 현실에서든 사이버에서든 자신의 인격이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시민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고 퍼뜨릴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시민의 커뮤니케이션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자유와 책임의 균형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이버 상의 모욕과 명예훼손에 있어 피해당사자가 처벌을 요청하지 않더라도 검찰이 기소할 수 있을지, 일선 검사와 경찰이 명확하고 투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모욕과 명예훼손이라고 하는 것이 명확히 정의하기 힘든 것이라 여러 정황을 잘 파악한 후에 법원이 판단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 예로 ‘사이버모욕죄’가 도입된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난한 사이버논객을 처벌할 수 있는 것인지, 또한 최근 기부천사로 화제가 된 한 연예인에 대해 그 가족의 이념적 성향을 거론하며 ‘좌익의 선전 전략’이라며 논란을 일으킨 보수논객의 언행을 비난하는 네티즌을 검찰이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모욕의 무한루프에 빠지다

한 어린 연예인의 기부행위가 건강한 문화로 뿌리내려지지 못하고 ·보수 논객의 이념 편향적 발언으로 인해 사회적 논란거리가 된데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이러한 행위가 오히려 ‘사이버모욕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센터는 '공개질의'에서 이념 편향적 발언은 문제지만 이것을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해 법률로 다스린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그 논객이 오히려 센터를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故)최진실씨를 죽인 악성댓글을 근절하기 위해 ‘사이버모욕죄’는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한 어린 연예인의 가족에 대한 그의 공격과 주장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고 또한 가족에 대해 언급한 것이지 그 연예인을 직접적으로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한 개인이 가족과 분리되어 판단될 수 있는지, 과연 그 본인의 경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주장하는 인간 모욕에 대한 기준도 모호할 뿐이다.

언론인권센터가 사이버모욕죄에 대해 발언하자마자, ‘모욕의 무한루프’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의 규율’이 사이버 모욕을 없애는 길

그 논객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다. 센터가 사이버모욕에 대한 설명의 내용 중 그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할 정도로 상처를 입힌 내용이 있었다면 유감이고 안된 일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법정에서 판단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사이버 모욕’을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이 참으로 모호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본의의 의사와 관계없이 경찰과 검찰의 기준으로 ‘악성 댓글’을 처벌하겠다는 것은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시민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모욕의 무한루프에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정부는 공권력이 획일적인 규칙을 만들어 개인의 인격권 침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민권을 저해하는 것으로써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실효성도 없다. 모두의 동의와 공감을 얻는 규칙을 만들어 내지도 못할 것이고 모두의 인정을 받으며 공정하게 적용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이란 애초부터 인터넷 공간에서는 불가능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시민 즉 이용자 스스로 사이버에 맞는 ‘시민의 규율’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자율의 힘을 키우기 위해 미력이나마 있는 힘을 다해 이용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치열하게 논쟁하고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우리 센터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민권을 침해하는 요소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문제제기도 함께 하면서 말이다.

모든 소통의 과정에서 스스로 기준과 규칙을 만들고, 자율적인 동의를 얻어 이를 적용하고 운영하는 것. 아마도 우리의 자율문화는 이러한 과정에서 냉정하고 공정하게 스스로의 규율을 만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 이 글은 네이버서비스 자문위원회 칼럼('08.12.15)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