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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의 친구들

3•1혁명과 대한민국 건국정신


3
1혁명과 대한민국 건국정신

신동진 이사(다큐멘터리 감독)


△ 왜 '31혁명' 정신인가?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필자(왼쪽)와 진지하게 경청하는 청중들

 "오늘 우리가 ‘건국정신’을 되새기고자 하는 이유는

동일하게 ‘민주’, ‘자유’를 얘기하면서도

서로 딴 생각을 하는 분열상을 극복하는

큰 원칙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90년 전인 1919년 3월 1일에 독립선언서가 선포되고 국내외에 걸쳐 만세운동이 1년 이상 지속됐습니다. 이를 ‘3·1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시절 임시정부 요인들은 그렇게 사용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1943년에 충칭(重慶)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은 3·1절 24주년 기념일을 맞이해 ‘석(釋) 3·1 혁명정신’이라는 글을 「대공보(大公報)」라는 중국신문에 기고하셨습니다.

“…3·1 대혁명은 한국민족 부흥을 위한 재생적 운동이다. 달리 말해 이 운동은 단순히 일본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자는 운동만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이 5000년 이래로 갈고 닦아온 민족정기와 민족의식을 드높이자는 것이다…”

‘운동’과 ‘혁명’은 그 어감(語感)도 다르고 의미도 다릅니다. 왜 굳이 ‘혁명’이라 했는지, 삼균주의로 유명한 조소앙 선생이 1941년 작성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채택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에 그 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선언(獨立宣言)은 우리 민족의 혁혁한 혁명을 일으킨 원인이며…(중략)…이는 우리 민족이 3·1헌전(憲典)을 발동한 원기이며 동년 4월 11일에 13도 대표로 조직된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은 대한민국을 세우고 임시정부와 임시헌장 10조를 만들어 반포 하였으니 이는 우리 민족의 힘으로써 이족전제를 전복하고 5000년 군주정치(君主政治)의 허울을 파괴하고 새로운 민주제도(民主制度)를 건립하여 사회의 계급을 없애는 제일보의 착수였다…”

제국주의, 군주제, 그리고 계급의 속박을 벗어던진 자유와 민주를 향한 함성! 그렇기에 1919년 3월 1일 선포한 ‘독립선언서’를 ‘헌전(憲典)’으로, 3·1만세운동을 ‘혁명’으로 명명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적인 의미로 본다면, 3월 1일의 ‘독립선언서’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태동시킨 역사적인 혁명적 문건이요, 그 선언서에 담긴 정신과 그에 입각해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의 삶과 꿈은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위기가 얘기되고 있는 요즘, ‘건국정신’을 되새기고자 하는 이유는 동일하게 ‘민주’, ‘자유’를 얘기하면서도 서로 딴 생각을 하는 분열상을 극복하는 큰 원칙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수입된 사상 속의 ‘민주’와 '자유‘가 아니라, 기존의 계급을 뛰어넘어 함께 풍찬노숙, 동가식서가숙을 하며 투쟁을 했던 그 분들을 떠올리며 대한국민이 지켜야할 ‘자유’와 ‘민주’가 무언지를 생각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