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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에게 물어봐/미디어 이야기

[기고] 거리의 기자들이 만드는 새로운 민주주의

거리의 기자들이 만드는 새로운 민주주의

송경재 |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 (언론인권센터 미디어이용자권익센터 소장)

2008년 06월 02일 (월) 22:40:13 미디어스  webmaster@mediaus.co.kr             
 
거리의 기자, 촛불문화제의 상징이 되다

2008년 6월의 서울광장.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문화제가 진행 중이다. 얼추 가늠해 보아도 수만 명은 넘어 보인다. 군중들 한편에는 홍보물을 나누어 주는 어린 10대 소녀에서부터 구경하시는 나이든 할아버지까지 다양하다. 한 어린이는 가족과 나왔는지 엄마의 손을 잡고 아빠 등에 매달려 있다. 젊은이들도 전날 있었던 진압에 대해 성토하고 서울광장은 민주주의의 열린 마당이 되었다.

한데 그들 중 몇몇은 카메라나 캠코더, 휴대전화를 들고 노트북을 만지면서 헤드셋에서 무언가 열심히 중얼거리거나 타이핑을 한다. 또 어떤 이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전송한다. 이들은 촛불문화제를 취재하는 “기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신문사나 방송사에 소속된 정식 기자가 아니다. 바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촛불문화제를 취재하는 거리
                                                     의 기자들이다.

거리의 기자들은 촛불소녀라는 참여하는 세대(smart mobs)와 함께 미 쇠고기 수입반대 운동의 아이콘(icon)이 되었다. 촛불소녀가 자발적인 참여세대를 상징한다면 휴대 인터넷과 카메라를 접속하여 노트북을 이용해 현장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거리의 기자는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거리의 기자, 스트리트 저널리즘(street jour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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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 시민이 머리에 웹캠을 쓰고 손에 든 노트북을 통해 현장을 중계하고 있다. ⓒ정은경

이런 새로운 형태의 기자 변화상은 미 쇠고기 촛불문화제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역사적인 연원은 바로 대규모 언론사들이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대와 대안적인 언론의 형태로 등장한다. 즉, 대안언론은 기존언론이 다루지 못한 영역에서의 담론을 생산하고, 새로운 미디어 역할을 수행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공간이고 이 운동을 주도한 것이 바로 시민기자, 오늘날 거리의 기자들이다.

스트리트 저널리즘이 본격화 된 것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20세기와 21세기의 전환기로 보는 견해가 많다. 탈계급과 탈물질사회, 분권화된 네트워크 사회로의 진입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을 가능케 했다. 물론 등장 배경은 세 가지이다. 첫째, 첨단 휴대 IT 장비가 등장하고, 둘째, 자발적인 시민의 적극적인 노력, 마지막으로, 기존 언론과는 다른 시각의 저널리즘인 대안 저널리즘의 확장에 기인한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고, 디지털에 민감한 세대가 등장하면서 누구나 거리에서 뉴스를 생산할 수 있는 물적 환경이 조성된다. 특히 네트워킹이 쉬운 참여․개방․공유의 웹 2.0은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구조를 확장시켰다. 그리고 현장과 연계되는 인터넷 토론과정에서 확인된 집단지성은 웹 2.0 방식의 시민참여와 스트리트 저널리즘의 강점으로 꼽히면서 새로운 미디어의 탄생을 가속화시킨다. 요컨대, 뉴스의 수용자였던 시민이 웹 2.0시대에 스스로 보도와 유통의 주체로 등장, 생산적 소비자로서 지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미 스트리트 저널리즘은 1999년 시애틀에서 전개된 WTO 반대시위에서 나타난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시위대는 첨단 전자 장비를 동원하며, 저지선을 돌파해 회의를 제지했다. 당시에도 휴대전화와 인디미디어(Indymedia)라는 미국과 유렵을 중심으로 하는 60여개의 인터넷 신문이 연대하여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표현했다. 이 사건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새로운 담론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경험은 2002년 효순․미선양 사건에서 나타났다. 당시는 사진들이 휴대전화를 타고 서로 공유하면서, 단문메시지(SMS)를 활용해 촛불문화제 참여를 독려하는 초보적인 단계였다. 그리고 스트리트 저널리즘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2005년이었다. 영국 지하철 테러에서 한 시민이 거리에서 휴대폰 카메라로 사고 현장을 찍고 이를 신문사와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문가가 아닌 시민이 제보하고 참여하는 스트리트 저널리즘이 본격화 한다. 그리고 최근 중국의 티베트 독립시위과정을 생중계한다던가, 미얀마 민주화 요구를 탄압하는 군부에 대항한 동영상은 스트리트 저널리즘의 영향이 크다. 티베트와 미얀마 등 정식 기자들의 접근이 차단된 상태에서 시민들이 찍은 한 컷의 사진과 동영상은 독립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되어 다른 어떤 전문기사보다 분명한 의미전달이 되었다. 

스트리트 저널리즘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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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밤 아프리카TV에서 '촛불'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자발적인 시민들이 참여하는 거리의 기자들은 인터넷에서 동영상, 댓글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여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들의 활약상은 전문 인터넷 생방송 사이트에서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2008년 6월 2일 현재, 인터넷 사이트 아프리카(http://www.afreeca.com/)에서 “촛불”이란 단어로 검색을 한 결과 48개의 생방송이 진행 중이다. 심지어 비가 오는 중에도 9개의 생방송이 운영된다. 영상 클립은 125개, 그리고 촛불문화제 생방송을 준비 중인 사람인 BJ만 해도 98명이 등록되어 있다. 그리고 각종 블로그나 UCC 등에 문자나 게시글로 중계되는 것까지 합한다면 하루에도 줄잡아 수 백 명의 기자들이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다.

이들의 역할은 여러 측면에서 촛불문화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첫째,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시켜주는 촉매제로서 역할이다. 시민들은 문화제에 참석하지 못해도 생방송을 보면서 진압과정의 문제점을 알게 된다. 실제 살수차와 군홧발 진압과정이 있었던 지난 5월 31일에는 다음날 새벽부터 시민들이 과잉진압을 규탄하며 다시 시청광장으로 모이는데 철야생방송 보도는 큰 역할을 했다.

둘째, 경찰의 과잉진압을 차단하는 감시자 역할도 하고 있다. 경찰의 진압이 특공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격렬해짐에 따라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거리의 기자들은 밀착 취재로 경찰의 과도한 진압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시민들의 활발한 정보소통의 도구가 되고 있다. 촛불문화제의 성격과 주장하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거리의 기자들이 주도하는 인터넷에서의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그리고 보수적인 신문과 방송 논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현실을 알리는 등 냉정한 평가도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이들의 특징은 스스로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들의 힘이다. 전문직 기자들이 마감일정에 쫓겨 현장을 떠나면 문화제 현장을 중계하는 것은 바로 이들이다. 무선인터넷으로 연결해서 생방송되기 때문에 별도의 송고나 편집이 필요 없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 나날이 거리의 기자들은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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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 저널리즘'을 다룬 5월29일자 한겨레 기사.

스트리트 저널리즘이 발전한다는 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사유할 숙제도 만들었다.

첫째, 기존 언론이 가진 문제점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신문이나 방송이 올바른 시민들의 지향과 요구사항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 이것이 거리의 기자들이 나온 이유이기 때문이다. 5월 24일 시청광장에서 만난 한 거리의 기자는 이를 "기존 언론의 보도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즉 스트리트 저널리즘이 발전하는 것은 기존 언론의 신뢰 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성 미디어 위기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둘째, 우려되는 점도 있다. 그것은 아마추어가 가질 수 있는 지나친 감성화 경향이다. 물론 사실을 전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를 표현하기 위해 자극적이고 감성적인 기사나 방송을 제작할 수 있다. 얼마전 한 네티즌이 과거 시위사진을 게재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다수의 거리의 기자들은 지금도 현장을 뛰며 취재한다. 이는 아직 정제되지 않은 스트리트 저널리즘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따라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절제되고 질적인 참여가
확대되고집단적인 지성의 힘으로 민주적인 언론의 발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셋째, 거리의 기자들이 한 순간의 관심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기존 언론에 대한 대안세력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일회성 보도가 아닌 "한국판 인디미디어"의 설립을 통한 시민참여 저널리즘으로 발전해야 한다. 단순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런 소중한 경험을 갈무리하여 주류·보수담론과는 다른 대안적인 시각에서, 그리고 시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언론으로서 위상을 가진다면 의미성은 무척 클 것이다. 미디어와 웹 2.0이 결합되면서 참여적이고 개방과 공유의 정신이 살아있는 새로운 미디어 형태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