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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 상담 연재

‘이반문화 확산’ 뉴스에서 다룰 만큼 특별한 건가요?


‘이반문화 확산’ 뉴스에서 다룰 만큼 특별한 건가요?


김밥이 먹고 싶었다. 한 밤 중에 텁텁한 실내를 환기 시키려고 창문을 열자 어디선가 김밥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룸메이트인 형식의 방문을 노크했다. 머리가 부스스하게 한 쪽 방향으로 쏠린 형식이 실눈으로 문을 열었다.

 “왜요, 형?”

 “김밥 먹을래?”

 “이 밤에?”

 “그럼 내 것만 사온다.”

 “아니, 나도. 그리고 컵라면도요. 김밥은 라면 국물과 먹어야 제 맛이지.”

건물 위층은 주택으로 만들어 개조되어 몇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건물 1층과 2층은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뒤 본격적으로 카페를 열면서 이곳에 살게 된 건 불과 2년 밖에 되지 않았다. 어두운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갔다. 후드 티에 달린 모자를 쓰고 골목을 따라 걸었다. 김밥 집으로 가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 짓뭉개진 김밥이 줄을 서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이게 뭐지? 김밥이 마지막으로 떨어진 곳에 이르자 이 동네에서 오래된 24시간 분식집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뜨거운 액체가 내 얼굴과 상의를 덮쳤다.

 “어마, 어떡해! 괜찮아요? 뜨거울 텐데. 아가씨! 그러게 왜 안 되는 걸 생떼를 부려?”

 “아줌마가 김밥 허술하게 담아줘서 길바닥에 흘린 건데 그게 내 탓이에요? 빨리 김밥 다시 싸줘요! 전 오늘 김밥을 반드시 먹어야 해요! 해장 김밥!”

찬 물수건으로 어묵 국물이 튀긴 손가락이랑 얼굴을 닦고 있었다. 너무 뜨거워 비명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다 큰 여자가 어디 술 먹고 와서 행패야? 집에 가요, 집! 근데 총각 진짜 괜찮으우?”

 “네, 뭐. 참치김밥 두 줄 주세요.”

나에게 뜨거운 어묵 국물을 날린 여자는 정작 사과 한 마디도 없었다. 테이블에 앉은 여자는 술에 잔뜩 취해 새빨개진 얼굴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분식집 아줌마가 김밥을 포장해 나에게 건네자마자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맞은편 편의점으로 들어가 컵라면을 집어 드는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시선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코트 주머니에 양 손을 넣은 여자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정확히 말하자면 내 손에 들린 김밥을 노려보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계산을 마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걸어 카페 앞에 다다랐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낯선 손의 악력이 내 팔을 붙잡았다. 꿈이라면 당장 깨고 싶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팔꿈치로 낯선 이의 얼굴을 강타했다. 퍽 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돌리자 나에게 어묵 국물을 뿌렸던 여자가 길바닥에 누워있었다. 실수였다.



내가 운영하는 카페는 동성애 모임이 열리는 곳이 아닙니다


형식이를 불러 쓰러진 여자를 집으로 업어왔다. 여자의 왼쪽 눈 밑 광대뼈에 시퍼런 멍이 물들기 시작했다. 형식이는 여자의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냈다.

 “형. 이 여자 나이 엄청 많은데요? 형보다 많아요. 젊어 보이는데 의외네요.”

 “몇 살인데?”

 “서른여덟! 어, 명함도 있다. 변호사? 이 여자 변호사인가 봐요. 어떡하실 거예요?”

 “모르겠다. 남자도 아니고 웬 아줌마가 우리 집에 굴러 와선.”

 “그러게요. 우리는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는 사람들인데. 아! 이 분 입장에선 차라리 다행인건가?”

여자의 얼굴에 멍이 퍼지기를 멈출 즈음, 밤을 꼴딱 샌 나는 밖이 서서히 환해지자 자는 걸 포기했다. 텔레비전을 틀었다. 새벽 어스름을 깨고 앵커의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한 번은 여자를 쳐다보고 한 번은 뉴스를 쳐다봤다. 김밥을 들어 여자 코끝에 대고 흔들었다. 여자가 눈을 떴다. 여자는 태연하게 일어나서 막 샤워를 하고 나온 형식을 지나쳐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그 사이 아침 뉴스에 익숙한 장소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형식아! 이리 와 봐! 우리 카페가 나왔어. 그런데….”

보도 제목은 ‘이반문화 확산’이었다. 동성애 모임이 주로 열리는 곳이라는 취지의 현장 르포 자료화면으로 우리 카페의 간판과 실내 장면이 나왔다. 간판은 살짝 모자이크 처리를 했으나 알 만한 사람들은 눈치 챌 만큼 허술했다. 내가 운영하는 카페는 동성애자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 아니라 회사 빌딩 근처 먹자골목에 위치한 평범한 카페다. 보도에는 내 카페가 중고등학생 동성애자들이 모여 즐기는 곳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당황스러웠다.

 “이게 뭐예요? 언제 촬영한 거지?”

카페에서 온종일 일하는 형식과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뉴스 화면을 계속 바라보았다. 카페 외부 자료화면에 우리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모습도 나왔다.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했다.



반론보도청구, 언론중재위원회 또는 법원을 통해 할 수 있다


그 때 옆에서 쉰 목소리로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부엌에서 발견한 김밥을 가져와 먹고 있었다.

“허락 없이 촬영한 거 확실해요?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카페?”

“아줌마. 우리 카페는 그냥 평범한 카페인데요. 뉴스 보도가 잘못되었어요.”

“그럼 뭘 고민해요. 언론사에 반론보도청구해요. 언론중재위원회라고 있어요. 그 곳에 반론보도청구를 하거나 법원에 반론보도청구 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하거나. 잘못된 사실이면 명예훼손 혐의에다 허락도 받지 않고 촬영했으면 프라이버시 침해지.”

나는 뉴스가 지나간 후에도 멍하니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았다. 왜 하필 우리 카페일까? 정말 우연인 것일까? 동성애가 잘못도 아닌데 동성애 문화가 확산되는 게 큰일인 것처럼 호들갑 떠는 보도는 뭐지? 옆에서 김밥을 꾸역꾸역 먹던 여자가 형식에게 물을 달라고 시켰다. 형식이 군말 없이 물을 떠 와 여자에게 건넸다.

 “아줌마, 진짜 변호사 맞아요?”

 “응. 근데 너 몇 살인데 나한테 아줌마래?”

 “스물 셋이요.”

 “용서해줄게.”

 “형,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요. 우리 이 아줌마한테 도와달라고 해요. 형,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혹시…. 아줌마, 우리가 동성애자인거랑 이 보도가 잘못된 거랑 상관있어요?”

 “아니, 전혀 관계없어. 근데 저기 멍 때리고 있는 사람이 카페 사장님?”

 “네. 그런데 아줌마, 눈 밑에 멍 말이에요. 아줌마가 어제 김밥 냄새 맡고 우리 형 따라오다 전봇대에 부딪쳐서 생긴 거예요. 친절한 우리 형이 아줌마 구해준 거예요. 절대,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러니 우리 좀 도와주세요.”

 “돈만 지불하면 언제든지.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있는 거라고?”    


정다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