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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 상담 연재

내 의사와 달리 뉴스에 인터뷰를 한 것처럼 보도 되었습니다



내 의사와 달리 뉴스에 인터뷰를 한 것처럼 보도 되었습니다


아파트에 살면 편리한 만큼 고역스러운 점도 많다. 방음도 잘 안되고 아랫집 공사에 윗집 아이들 뛰어놀면 집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우아 떨고 싶은 마음도 싹 사라진다.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나면 삶이 편안해질 것이란 희망은 착각이었다.

은퇴 후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 붙어있는 남편에게 식사를 차려준 후 혼자 베란다로 나왔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새로 산 흙으로 다육식물을 옮겨 심었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마흔 개가 넘는 화분에 다양한 종류의 다육식물이 자라고 있다. 흙을 만지는 시간이 늘면서 점점 손이 거칠어졌지만 식물이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 자식 키우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 나서 행복했다. 남편은 등산을 즐기면서도 손에 흙을 묻혀가며 섬세하게 식물을 키우는 일에 좀처럼 흥미를 못 느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화분에 어여쁜 다육이를 옮겼다.

해가 중천을 지났다. 옆집 아이가 중학교에서 돌아온 모양이었다. 피아노 연주가 벽을 타고 넘어왔다. 새로 이사 온 옆집 아이의 피아노 소리가 소음처럼 여겨졌다. 처음 한두 번은 들을만했지만 나중엔 짜증이 났다. 때로 해가 지고 나서도 피아노 소리가 들릴 때면 옆집에 찾아가 한 마디 할까 말까 수백 번 고민을 했다. 이와 더불어 윗집에 막 예닐곱 살이 된 남매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그 때부터 우리 집은 시장 한 복판에 있는 것처럼 시끌벅적해진다. 정작 남편이랑 나는 한 마디 나누지 않는데도.

이사를 가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처음 남편과 내 명의로 산 집이고 여기서 자식들을 다 키워서 막상 떠나려니 미련이 남았다. 또 이 나이에 이삿짐 싸고 풀 생각을 하니 아찔해서 이사는 진작 포기했다. 그렇다고 옆집이나 윗집에 뭐라고 한 마디 할 수 없다. 나도 똑같이 그 애 엄마들처럼 우리 아이들 나무라며 주변에 죄송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살아온 세월이 있지 않은가. 그 시절이 떠올라 때로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도 한 번 더 참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해결책이라곤 내가 그 집을 잠시 떠나는 것이다. 장도 볼 겸 소음도 피할 겸 장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마치 인터뷰를 한 것처럼 보도된 내 모습


시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오랫동안 함께 알고지낸 동네 이웃들이 모여 있어 다가갔다. 그들을 둘러싸고 카메라와 기자가 서 있었다.

 “휘선이 엄마, 무슨 일이야?”

 “원진이 엄마 시장가는 길? 여기, 기자 양반이 우리 아파트에서 얼마 전에 층간 소음 때문에 누가 경찰 신고를 해서 한 밤중에 경찰차 왔잖아? 뭐 그런 거 관련해서 물어보더라고.”

기자가 당시 경찰차가 왔던 소동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층간 소음 문제에 대해 고민은 없는지 주민들에게 물었다. 다들 말 많은 아줌마들이라 금방 이런 저런 경험이 쏟아졌다. 그러다 기자의 질문이 나에게 향했다. 예전에 경찰을 불렀던 그 집이 바로 우리 옆집이었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이 말했기 때문이다. 옆집엔 수험생 자녀가 있었던 옆집 부부는 윗집에 술주정뱅이 노인에게 새벽에 조용히 해달라고 계속 항의를 했다. 급기야 술주정뱅이 노인이 망치를 들고 옆집 문을 내려쳤고 옆집 부부는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나는 마지못해 이야기를 꺼냈다.

 “아파트인데 어떡하겠어요. 아파트 살면 다 그렇지 뭐.”

 “그 때 상황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 주시겠어요? 그래서 옆집은 어떻게 됐나요?”

 “그 일 있고나서 아파트 사람들이 다 바들바들 떨었죠. 옆집은 부랴부랴 이사 갔어요. 윗집 박 씨 할아버지는 여전히 술 마시고 새벽에 이따금 뭐 던지는 소리 나기도 하고. 아휴... 옆집에 누가 새로 이사 오긴 했는데 그 집은 잘 지내나 별말 없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아파트에서 누가 시끄럽다고 불만할 처지가 되나요. 결국 서로 피해주고 받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제가 말한 거…”

기자가 수첩에 뭘 적다말고 나를 쳐다보았다.

 “네? 왜 그러세요?”

 “아니, 제가 말한 거 방송에 나가는 건 좀 그래서…. 난 그냥 그런 일이 있다고 말하는 건데…. 카메라가 자꾸 날 찍는 것 같아서….”

 “걱정 마세요. 안 내보낼게요.”

그 일이 있고나서 며칠이 지났다. 그 기자를 만난 일조차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저녁 시간이 되자 나는 고등어를 구웠고 새로 담근 김치를 꺼내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남편은 말없이 식탁 앞에 앉았다. 우리는 평온한 일상을 마무리하는 의식을 치르듯 저녁을 먹었다. 자연스런 수순인 듯 설거지를 하고 단감을 담은 쟁반을 들고 거실로 향했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았다. 정보 프로그램이 끝나면 일일 드라마를 보고 일일 드라마가 끝나면 뉴스가 시작된다. 남편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나를 쳐다보더니 손가락 끝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였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터뷰는 마치 내가 윗집 박 씨 할아버지가 층간 소음 사건의 원인이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그런 생각도 한 적 없었다.



인터뷰한 것처럼, 취재에 응한 것처럼 보도한 경우는 프라이버시권 침해


괘씸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안방에서 코 골고 자던 남편이 잠이 깨 일어나 내가 있던 거실로 나왔다. 깜깜한 어둠속에 앉아있던 나를 보고 남편은 마치 국민체조를 하듯 발버둥 치며 놀란 마음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다.

 “놀랐수?”

 “아니, 귀신도 아니고, 자네 때문에 칠순잔치도 전에 저승길 밟을 뻔 했어!”

 “저승길 밟지 그랬수?”

 “여편네가 못하는 말이 없어. 하여튼 심사가 꼬여가지고선. 아까 뉴스 나온 것 때문에 그래?”

 “네, 그래요. 난 사실 이사 간 옆집 부부 욕을 실컷 해주고 싶었는데, 그 땐 차마 못하고 대충 얼버무렸어요. 그런데 인터뷰 보니 윗집 노인네가 문제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 같더라고. 그 때 박 씨 할배가 옆집 문 망치로 두드렸을 때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데.”

 “이사 간 집 부부가 유난스럽긴 했어. 여기저기 사람들 못살게 피곤하게 만들고. 근데 왜 잠은 안자고 산송장처럼 달밤에 나와 있어?”

 “내 마음이 불편하잖아요. 게다가 그 때 기자양반이 분명 안 내보낸다고 했다고요.”

 “그럼 그 우리 동네 시장에 있는 김 변호사 찾아가 봐.”

 “작년에 시장에서 벌이는 바둑대회에서 당신이랑 바둑 대결해서 졌다는 그 여자 말예요?”

 “응. 종종 바둑으로 밥값 내기 하거든.”

몇 시간 못 잤다. 아침에 사무실 문이 열리기 전부터 가서 서성였다. 변호사가 도착하자마자 나는 겪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녀가 차분히 이야기를 듣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인터뷰를 한 사실이 없는데 인터뷰를 한 것처럼 보도하는 경우, 인터뷰를 거부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취재에 응해 인터뷰를 한 것처럼 보도한 경우처럼 언론사가 인터뷰 조건을 무시하였을 때에는 말입니다. 이러한 경우로 인하여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과 다르게 보이도록 보도하여 오해를 받게 하였다면 프라이버시권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언론사에 먼저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추후에 사모님께 알려드리죠. 참, 몇 달 째 사장님께 신세 많이 지고 있습니다. 안부 전해주세요.”


정다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