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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에게 물어봐/미디어 이야기

인터넷 신뢰와 규제의 신뢰


                           인터넷 신뢰와 규제의 신뢰


민경배 |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교수


“소통이 문제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자주 입에 오르내렸던 말이다. 그런데 같은 말인데도 각자가 처한 위치에 따라 해석이 크게 엇갈린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이명박 정부가 인터넷과 시청 앞 광장에 분출하는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배후론, 괴담론 따위나 흘리는 모습을 들어 이 말을 꺼낸다. 시민들은 디지털 시대의 쌍방향적, 수평적 소통을 원하는데 정부는 여전히 일방적, 수직적인 아날로그식 소통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반면 정부 여당은 인터넷 여론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소통의 문제를 말한다. 인터넷 공간에 잘못된 정보, 부정확한 정보가 무분별하게 흘러 다니고, 악의적 욕설과 유언비어가 난무하기 때문에 소통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소통이 문제다”라는 말 자체만을 두고도 이렇게 서로 소통이 안되고 있으니 확실히 소통이 문제는 문제인 것 같다.

그렇다면 소통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대방이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선결 조건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터넷은 소통의 기본 조건을 충족시키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자기 견해를 만인을 향해 이야기할 수 있으며, 듣고자 하는 사람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터넷에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제약 없는 정보의 유통이 보장될 경우에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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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까지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이 인터넷에 대해 가졌던 인식과 태도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앞으로 국민과의 소통 문제는 더 악화되면 악화됐지 개선될 조짐은 도무지 보이지 않을 듯싶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OECD 장관회의 개막 연설에서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약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또 국회 개원 연설에서는 “부정확한 정보를 확산시켜 사회불안을 부추기는 정보전염병(infodemics)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스스로가 인터넷에 분출하는 국민 여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국제회의 석상에서 밝히고, 심지어 다수의 네티즌들을 전염병 환자로 취급해 버린 셈이다. 물론 청와대측은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는 원론적 발언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런 비중 있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별 맥락 없이 한가하게 교과서적인 이야기나 하고 있었다는 소리인데, 그걸 온전히 믿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여당도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다음 아고라를 겨냥해 “소수의 인터넷 룸펜들이 다수를 가장해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는 디지털 쓰레기장”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원내대표인 홍준표 의원도 “인터넷은 유언비어와 괴담의 유통 공간”이라며 맞장구 쳤다. 이 분들이 인터넷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던 그거야 자기 자유겠지만 단지 생각에만 그치지 않을 것 같으니 문제다.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벌써부터 인터넷 여론을 통제하기 위한 각종 규제 법안들이 줄줄이 나올 태세이다. 실명제 확대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며, 포털의 경우엔 언론 기능을 제한하는 한편, 네티즌 게시글 삭제를 강제시키기 위한 방안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180석이 넘는 거대 여당이 되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못할게 없다. 게다가 검찰까지 온라인 공안정국 분위기를 조성하며 네티즌들에게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정부는 지금껏 인터넷에 쏟아지는 국민 여론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여건까지 원천적으로 제약하려 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터넷 관련 발언 중 딱 하나 맞는 부분이 있다.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담보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신뢰가 규제를 통해 형성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라면 소통의 문제는 점점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소통이 갈수록 문제니 걱정이다.

(디지털타임즈, 2008.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