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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의 친구들

티벳에서 관광의 그늘을 거닐다

[언론인권센터 사람들] 임영신 자문위원 (이매진피스 공동책임자)


 티벳에서 관광의 그늘을 거닐다

 임영신  자문위원 (이매진피스 공동책임자)

















시가체 시각장애인 학교 친구들과 함께(가운데 흰옷 입은 이가 필자)

ⓒimaginepeace 조완철

2007년 6월, 라싸에서 하루를 보내고, 저마다의 시선을 나누기 위해 모인 저녁, 하루 종일 관광지가 아닌 사람들의 공간을 찾아다닌 제천 간디학교 친구들에게 라싸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준 듯했다.
"라싸 시내에 나이키 매장이 있어서 너무 놀랐어요." "중국인 타운의 수퍼에 갔는데 한국의 대형마트 뺨쳐요." "맞아요. 큰 상점 주인은 다 중국인인데 종업원들은 거의 티베트 사람들이었어요."
아이들이 본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이었으나, 어떤 진실임이 분명한 듯했다.
"한족은 가게를 하고, 장족은 좌판을 한다."
한족의 이주가 시작되며 바뀌어 가던 라싸의 풍경을 담은 한 마디였다. 실제로 1993년 실시된 한 조사에 의하면 라싸에는 1만2827개의 식당이 있었다. 그러나 그 중 티베트인의 소유는 단 300개뿐이었다. 시가체에선 192개의 가게 중 3개만이 티베트인이 소유하고 있었고, 캄도나 다른 지역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는 기록이다.(www.freetibet.org)
1995년 4월 5일자 <뉴스위크>는 '돈과 이주민들을 앞세워 중국이 티베트을 다시 침공한다'라는 제목으로 티베트의 중심지 라싸와 티벳의 문화가 최근 이주해 온 중국인들로 인해 훼손되고 있다고 티베트의 한족화를 들추어냈다. 이미 1992년, 중국 정부는 한족이 티베트에 이주하는 것을 제한하던 조치를 해제함과 아울러 한족에게 중국 내에서의 임금보다 2~3배 높은 일자리까지 제공하며 이주를 지원하고 나선 터였다.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세금감면과 더불어 파격적인 저리 이자의 대출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 호혜 속에서 한족들은 쉽게 라싸의 요지에 있는 건물과 땅을 획득했고, 티베트 사람들은 그들의 집과 땅을 빼앗기고 있었다.

2006년 칭창 철도 개통, 급속한 관광바람

중국이 그토록 공을 들인 중국의 한족 이주정책이 꽃을 피운 것은, 2006년 6월 칭창 철도 개통과 함께였다.
티벳에서 관광업을 한 지 5년 정도 되었다는 한 가이드는 이렇게 답을 했다.
"칭창 철도 개통 이후 최대 관광객은 외국인이 아니라 한족이에요. 하지만 대부분 북경이나 성도, 서안 등의 중국 여행사와 연결된 패키지 관광객들이죠. 당연히 티베트에 있는 중국인 여행사와 연결되는 거구요. 대부분의 여행사들이 차량을 공동 소유하고 있으니 우선순위를 중국 여행자들이나 본토 여행사에 연결된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두게 되죠. 티베트 사람들은 영어도 중국어도 잘 안되니 밀릴 수밖에 없죠. 물론 자금력도 큰 문제구요." 실제로 칭창 철도 개통 이전 120만이었던 티베트 관광객은 2006년에 180만 명, 2007년엔 400만을 기록했다. 2007년 티베트의 관광수입은 6억6천만 달러에 달했다.(www.citibet.org.cn)
눈이 부시도록 빠른 속도로 개발과 발전이 밀려드는 라싸, 그러나 그 라싸의 오랜 주인인 티베트 사람들이 설 땅은 너무 좁고 가파른 것이다. 티베트에서 관광업을 하며 살아가는 한 한국인의 말을 빌면 "1997년, 300만 원 정도였던 건물 값이 지금은 100배가 올라 3억을 호가하고, 칭창 철도가 개통된 이후에만 2~3배가 올랐다."고 했다. 죠캉 앞, 중국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온 중국풍 화려한 티베트 전통의상 가게들 맞은 편, 티베트 옷 가게를 하는 쏘남은 한숨을 쉬듯 말했다.
"티베트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라싸에서 집을 살 수도, 가게를 차릴 수도 없어요. 라싸의 모든 것들이 티베트 사람들에겐 너무 비싸거든요."
그렇다고 돌아갈 유목의 땅과 삶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광활한 목초지는 개발을 위해 강제수용을 당했고, 농지는 한족을 위한 주거지 등으로 용도변경을 당했다. 이주해 온 것은 중국인들이지만, 정작 이주를 당하고 있는 것은 티벳인들이다. 티베트의 젊은이들은, 여성들은 한족들이 운영하는 호텔의 객실 청소부로, 인력거꾼으로, 식당 접시닦이로, 웨이터로, 기념품 판매원으로 하나 둘, 그들의 들과 산을 떠나 이주하기 시작했다. 인구 19만 명의 라싸에 몰려드는 400만 명의 관광객들을 위해 누군가는 일 년 내내 방을 청소해야 하고, 인력거를 끌어야 하고, 접시를 닦아야 하므로…. 


관광지가 된다는 것 _ 지불한 댓가를 헤아릴 수 없는 삶

얻은 것보다 지불한 것이 너무 많다."
이것은 1989년 서거한 판첸라마의 유언이었다.
중국은 티베트의 수자원을 빼앗기 위해 이미 티베트 영토의 60%를 잘라냈다. 산림벌채를 위해 10만 명의 티베트 사람들이 강제노동을 당했고, 칭창철도를 건설힐 때 동원된 티베트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죽었는지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했다. (www.tibet.org)
2008년, 3월 14일에는 거리로 달려나온 티베트 시민들을 향해, 중국이 다시 한 번 총부리를 겨눴다. 여행자의 거리에서 400여 명의 티베트 시민이 죽고 6000여 명이 구금당했다. 망명정부는 올림픽 기간에도 캄 지역에선 140명이 사살 당했다고 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죽음을 목격한 이들에게는…
무너져간 것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진실을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이들에게는…
땅 속의 피가 마르지 않는 광장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는 관광객을 바라보며 그들을 위해 운전을 하고, 침대 시트를 갈아야 하는 티베트의 이주자들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