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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별 상담 연재

내 의사와 무관하게 사용된 사진 때문에 섹시화보광고모델로 오해 받고 있어요


내 의사와 무관하게 사용된 사진 때문에 섹시화보광고모델로 오해 받고 있어요


어릴 적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부끄러움도 없이 곧잘 포즈를 취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은 내가 크면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을 할 거라 생각했단다. 먼지가 앉은 앨범을 꺼내 오래된 사진을 보면 텔레비전에서 연예인들이 짓는 표정을 따라하는 어린 내가 있다. 전국의 많은 아이들이 그러했듯 예닐곱 살의 나 또한 그 아이들처럼 텔레비전 속에서 화사하게 웃는 그런 꽃 같은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해가 지나고 그런 선망은 시들해졌다. 나는 평범한 아이들 속에서 똑같은 생활을 했고 그저 그런 대학, 무난한 아이들이 가장 많이 가는 학과에 진학했다.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일 따위 없었다. 이따금 모델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뿐이었다. 한 때 꿈꾸었던 환상적인 미래는 오래된 시크릿 박스에 꽁꽁 감춰져 있었다. 졸업 후에 나는 평범하게 직장을 다녔고 연애를 했고 매달 꼬박꼬박 적금도 넣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밉보이지 않으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평범함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에 벼락이 떨어졌다. 재수 없게도 우산을 썼는데 근처에 피뢰침이 없어 꼭지가 제일 높은 내 우산으로 벼락이 내리꽂힌 기분이랄까. 멀쩡해 보였던 회사가 한 순간에 부도나 실업자가 되었고,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는 나와 평생 살 생각을 해보니 견딜 수 없는 부분이 많다며 나를 차고 두 달 뒤에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부모님 집에서 쭉 살아왔던 터라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나는 눈치가 보였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고용하겠다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인터넷을 통해 개인의 정보가 유출되었을 경우


실업자의 기본자세답게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를 켜 구직사이트를 전전했다. 그러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뜬 어떤 기사를 클릭했다. 그런데 웬걸, 기사보다 더 익숙한 광고사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몇 달 전 인터넷사이트 광고회사의 제안으로 찍었던 내 얼굴과 몸매 사진이 기사에 붙어있는 광고 사진으로 뜬 것이다. 화들짝 놀랐다. 광고회사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광고모델 아르바이트를 한 지 오래된 나에게 연락이 왔다. 회사에서 홍보 사진 콘테스트를 하는데 사진을 찍어 잘 나왔을 경우 상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상에는 당연히 상금도 걸려 있었다. 일도 없고 궁핍했던 나는 아르바이트하는 셈 치자고 마음먹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내 동의나 허락도 없이 그 때 찍었던 사진을 상업 광고에 이용했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한 번 연락이 오기 시작하자 수십 통의 메시지가 일주일 내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부모님도 걱정하기 시작했다. 사진 밑에 박힌 광고 문구가 영락없이 나를 섹시화보광고모델처럼 오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입장이 난처해졌다.

화가 나서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해가 뜰 무렵에야 가까스로 잠들 수 있었다. 광고회사에 연락해 항의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내가 이용당할 수 있는 처지인가 생각이 들자 우울해졌다. 첫 벼락이 떨어진 그날 이후로 무난했던 내 삶에 갑작스런 시련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아팠다. 두통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방밖이 소란스러웠다. 엄마의 친한 친구인 옥인동 아줌마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비비고 사방으로 뻗은 머리를 박박 긁으며 밖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아줌마가 나보고 이리 와보라고 손짓을 했다.

 “요새 사진 찍은 게 인터넷 돌아다녀서 고민 많다며? 네 엄마한테 다 들었어.”

 “아…. 네.”

 “다른 게 아니라, 나도 전에 인터뷰 허락 안했는데 뉴스에 나와서 좀 속상했던 적 있었거든. 근데 우리 집 바깥양반이 소개해준 변호사가 잘 처리해줬어. 얘길 들어보니까 이런 사건을 좀 많이 접해본 모양이더라. 너도 얼른 씻고 준비해. 아줌마랑 같이 그 변호사한테 가보자.”



촬영 당시 초상의 작성에 동의하더라도 영리를 목적으로 유포 및 공포한 것은 초상권 침해


거절을 할까 하다가 어차피 방구석에 앉아 고민하느니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아보자는 심정으로 샤워를 하고 엄마와 아줌마와 같이 변호사 사무실에 갔다. 생각보다 깜짝 놀랐다. 후미진 사무실과는 어울리지 않게 매력적인 젊은 여자 변호사였다. 얼굴에 기름지고 머리는 이대팔로 가른 발음이 줄줄 새는 아저씨가 있을 줄 알았다.

변호사가 인터넷 매체를 일일이 찾아보며 사진을 확인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듣더니 걱정할 것 없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변호사가 한 말은 으레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왠지 위로가 되었다. 변호사가 말했다.

 “사진을 촬영할 당시에는 초상의 작성에 동의를 했더라도, 이를 공표하여 영리적으로 이용하는 데에는 동의한 적이 없잖아요. 게다가 사진 찍고 대가를 받지도 않고 상도 받지 않았다면서요.”

 “네, 맞아요. 시간만 낭비했어요.”

 “이 경우에 영리를 목적으로 인터넷에 사진을 유포하여 공표한 것에 대해서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또 혜미씨가 섹시화보 광고모델인 것으로 오해하게 하여 혜미씨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킨 면이 있다면 명예훼손에 해당하므로 이를 근거로 손해 배상을 요구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다른 것 바라지 않아요. 인터넷에 하루라도 빨리 제 사진이 삭제되었으면 좋겠어요.”

  “걱정 마세요.”


정다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