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미지별의 친구들

용산참사 보고서, 인재(人災)를 조사하다.

 
  경찰이 용역 지역 철거민들의 농성 현장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1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중경상을 입은 참사는 말 그대로 인재였다. 사건 현장에서 철거민 20여명이 연행되어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강제진압 과정에서 희생자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경찰이 책임을 모면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실제로 경찰은 진압승인과 용역회사 직원 개입을 두고 말 바꾸기를 되풀이하였다. 

 
  물대표와 토끼몰이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과연 진상을 밝힐 수 있을까, 사고의 책임을 철거민들에게만 돌리지 않을까, 경찰에 면죄부를 주는 수사결과를 내놓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은 수사 초기에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부검으로 서둘렀다.

  시신은 불에 탔다 하더라도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소지품이 남아 있었으나 유족에게 통지하지 않았다. 성급한 부검으로 인해 수사초기부터 의혹을 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인권단체 연석회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여연대와 함께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여 진상조사활동에 나섰다.

  진상조사단은 연행된 철거민들, 현장주변 상인들, 유족들의 진술을 듣고, 시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유족들의 진술도 듣고, 시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각종 동영상도 세밀히 점검해 보았다.


  세가지 판단

조사하면서 진상조사단은 다음과 같은 정황에 주목했다. 경찰은 망루 안에 인화물질이 가득 들어 있고 1차 화재가 발생했다가 진화되었기 때문에 추가 화재 발생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텐데 진압을 감행하였다.

  또 인화물질 화재를 진압할 특수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오히려 불을 번지게 하는 물대포만 계속 쏘아댄 것도 불찰이다.

 퇴로를 차단한 채 망루 안에서 토끼몰이식 진압을 할 경우 사상자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진상조사단은 세가지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첫째, 철거민들의 농성은 경찰이 긴급하게 진압에 나서야 할 정도로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둘째, 공권력은 농성을 풀기 위해서 대화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셋째, 철거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충분한 대비없이 농성시작 하루만에 진압을 강행한 것이 대형참사를 일으킨 원인이었다.

  공권력의 의무

  설령 철거민들이 불법행위를 범했다 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안전하게 진압하는 것이 공권력의 당연한 의무이다. 농성 하루 만에 진압한 결과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비유하자면 '교각살우'의 우를 범한 것이다.

  현 정부가 '떼법문화 청산과 법질서 확립'을 내세우며 집회와 시위에 강경 대응한 끝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진상조사단은 철거민과 진압경찰 양쪽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강경진압을 승인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지휘관들을 고발하였다.

  그러나 검찰수사가 '봐주기 수사'에 그칠 것이라는 애초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검찰은 철거민들은 대부분 기소하면서도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묻지 않았다. 진상조사단은 처음부터 용역회사 직원들의 폭력을 수사하라고 촉구했으나 검찰은 이를 외면한는듯 했다.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MBC PD수첩이 용역회사 직원들의 범법행위를 밝히자 이마저 외면할 수 없었던지 추가수사를 벌였으나 가벼운 죄목으로 기소하는데 그쳤다. 용역 직원들의 행위를 지시하거나 묵인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찰의 책임은 묻지 않았다.

  위법한 진행 없어야

 당초 진상조사단은 어려움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니지만 막상 현장접근을 거부당하고 검찰, 경찰, 소방당국이 비협조적이어서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았다. 정부는 공정하게 조사해서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강호순 사건으로 용산참사를 덮으려는 시도까지 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진상조사단이나 국가인권위원회를 참여시키지 않은 채 검찰수사로 사건을 조기 종결하려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검찰의 부실수사를 비판하면서 국회 국정조사나 특검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실현될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철거민들에 대한 형사재판과 국가의 강제진압 책임을 묻는 유족 측의 소송을 통해서 진실공방이 계속될 것이다.

  진상규명활동을 하면서 위법한 공권력 진행으로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만 더욱 간절해졌다.